잔칫날 - 광대

2020. 12. 3. 23:45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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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무조건 보기로 했다. 극장에서 영화 보기 전 예고편 하는 걸 봤다. 보니 개봉날이 내 생일인 12월 2일에 영화 제목이 <잔칫날>이라고 하여 무조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예고편을 볼 때 약간 언발란스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는 생각은 했다. 영화의 소재가 장례식과 팔순 잔치다. 서로 묘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나 장례식은 죽은자와 상관없는 산자의 이야기다. 죽은자는 이미 아무 상관도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죽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지 별 상관없다.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이 1명도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화장을 하든 말든 그것도 상관없다. 내 시체를 어떻게 해도 난 상관없다. 이미 내가 죽은 다음에 벌어진 일이라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아닌 남은 사람들이 난리가 난다. 장례식도 그런 면에서 죽은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남은 사람들은 인생을 계속 살아야 한다. 관계도 여전히 지속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장례식을 기준으로 있던 일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전까지 서로 만나던 친척들이 장례식 이후로는 왕래가 사라진다. 명절이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기준으로 서로 모인다. 두 분 다 돌아가신 후에는 각자 자신의 가족끼리만 모이면서 왕래는 끊긴다. 그렇게 장례식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젼혀 만남이 없던 사람들이 장례식에서만 만나고 안부를 묻는 경우도 많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끊겼던 소식을 듣게 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죽음 이후에 드러날 수도 있다. 보이는 것과 달리 엄청난 사람일수도 있고, 화려해 보였던 사람인데 정작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사후 평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영화는 경만(하준)이 아버지를 보살피는 걸로 시작한다. 병원에서 제대로 걷지도 말도 못하는 상황이다. 동생 경미(소주연)랑 서로 교대로 아빠를 케어하는 중이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경만은 화장을 지운다. 행사를 뛴다는 표현처럼 피에로 등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전국 어디든 행사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간다. 웃으면서 사람들 앞에서 호객행위도 한다. 영화에서 경만은 그렇게 분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 있을 때만 웃는다. 화장을 지우고 본인으로 있을 때 웃지 않는다. 영화 내내 맨 얼굴인 경우에 웃는 걸 본적이 없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경미의 연락을 받는다. 엄마는 없고 둘이서 장례를 치뤄야 한다. 평소에 아빠는 딱히 활동이 활발하지도 않았고 투병을 해서인지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만과 경미도 그런 듯하다.

장례를 치루려면 돈이 든다. 경만에게 그런 돈이 없다. 병원에서 치료비마저도 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큰 아버지 아들은 와서는 아빠가 빌려간 돈을 꼭 갚으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대타로 팔순 잔치를 갈 수 있냐는 제안을 받는다. 장례식에서 상주로 역할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이다. 비용이 필요하니 상 중인데도 오전에 잠깐만 MC를 본다면 200만 원이나 되는 돈이 들어온다. 어쩔 수 없이 하기로 결심하고 행사장을 간다.

내 경우도 그런 적이 있다. 강의 과정 중에 식구가 돌아가셨다. 내가 상주는 아니더라도 있어야 했다. 강의를 연기할 수는 없어서 원래대로 강의는 진행했다. 2번이나 그랬다.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아도 난 내 할 일을 해야했다. 그게 생활을 하는 남아있는 자가 할 일이다. 더구나 나는 내가 없어도 진행되는 것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다. 죽은 사람에게는 이제 하등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도 남은 자에게는 그렇다.

팔순 잔치를 가야 하니 경만이 갖는 심정은 말이 아니었을 듯하다. 그렇다고 이런 사실을 경미에게 알리지도 못한다. 상 중인데 상주가 돈이 없어 일하러 가니 말이다. 입관 등의 절차가 있는데 상주는 없고 사람들이 몰려와도 이를 상대지도 않고 있다. 친척들은 후레자식이라며 경만을 욕한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내뱉는 이런 말은 비수가 된다. 팔순 잔치에서 할머니는 최근에 남편이 사망한 후에 웃어 본 적이 없다. 이에 아들이 경만에게 부탁을 한다.

제발 남은 여생도 얼마 되지 않는데 웃을 수 있게 해달라고. 경만은 상 중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해 웃게 만들어야 한다. 이 후 내용은 더욱 애달프고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만든 영화다. 돈이라는 건 이렇게 볼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다. 경만의 상황은 선택이 별로 없었다. 이를 위해서 더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배우고 노력해야 하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후반부에 가서 경만에게 생기는 일은 답답을 넘어 짜증까지 난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에 눈물이 핑 도는 일들도 많이 생긴다. 억지스럽게 짜내는 눈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인공인 경만의 상황을 함께 공감하고 깊게 빠져들면서 나왔다. 경만 역할을 한 하준은 여러 작품을 출연했는데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나 장례식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못가고 주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믿지 못할 때 그가 보여주는 절규는 처절했다. 특히나 얼굴로 표현하는 그 감정이 올 해의 연기였다. 뜻하지 않게 발견한 참 좋은 영화인데 극장에서 나 혼자 봤다.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시골 사람들이 경만에게 부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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