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0. 09:00ㆍ영화
정의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어디서나 무조건 통하는 정의는 없습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시대와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상황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전체적으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 이유나 원인없이 갑자기 대지진이 생겨 모든 건물이 전부 무너집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너무 신기하게도 황궁아파트 중 한 동이 아무런 타격도 없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딱 봐도 재건축해야 할 아파트인데도 엄청나게 잘 지은 듯합니다. 안전진단을 해도 튼튼해서 통과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하는 염려가 듭니다. 한국에서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이 통과되어야 좋아하거든요. 안전진단이 통과된다는 뜻이 건물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뜻인데도 말이죠. 무척이나 역설적인 상황이죠.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해야겠죠. 한국에서 아파트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딱 하나 남은 아파트 동에 살던 사람은 다 무사합니다.
황궁 아파트 이외는 전부 난리가 났습니다. 대지진이 난 게절이 바로 겨울입니다. 여름이면 밖에서라도 거주할 수 있겠지만 겨울에는 최소한 벽이라도 있어 바람이라도 막아줘야 하죠. 아파트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아파트 자체가 높은데 꽤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멀리서도 아파트가 멀쩡히 있는 걸 봤겠죠. 보통 한국 아파트의 특징은 단지입니다. 외국은 대부분 많아야 2~3동이지만 한국은 단지로 되어있죠. 이러다보니 내 것에 대한 배타적인 요소가 좀 더 강합니다.
내 걸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죠. 이런 정서가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이곳에 들어온 사람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당장 벌어진 일에 대해 서로 어리둥절하며 수습하기 정신없었죠. 각자 먹을 것이 어느 정도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한 눈에 봐도 주변이 전부 초토화되어 어떤 식으로 해결할 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1층에 있는 집에서 화재가 생기는데 외부 사람이 점거해서 벌어진 일이죠.
다행히도 현장에 있던 민성(박서준)과 영탁(이병헌)이 불을 끕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 동 전체가 다 타버릴 수도 있었겠죠. 이를 계기로 아파트 주민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회의를 합니다. 자신의 집처럼 불을 끄는데 앞장 선 영탁을 대표로 추대하자고 부녀회장인 금애(김선영)이 말합니다. 그 후에 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은 밖으로 내보내자고 회의 결론을 냅니다. 민성은 명화(박보영)과 부부로 외부 사람을 집에 들여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보내죠.
그 과정에서도 서로 싸움이 나고 영탁은 크게 다치지만 아파트 주민을 위한 행동이었죠. 아파트 주민이 전부 추켜세우면서 똘똘 뭉쳐 아파트를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만듭니다. 배급제를 하면서 먹을 것을 나눠 먹지만 공평하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기여한 만큼 나눠 갖습니다. 아파트에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바리게이트를 쳤죠. 그 밖으로 음식 등을 구하려 나가는 사람들을 모집해서 함께 이 위기를 헤쳐나가려고 합니다. 처음에 다소 쭈볏했던 영탁은 본격적인 대표가 되고요.
철저하게 아파트 사람과 외부 사람을 나누면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행동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어떤 스펙타클보다는 인간 군상에 대해 알려주는 영화로 흘러갑니다. 솔직히 이 영화가 여름 블럭버스터로 나온 건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이병헌과 박서준, 박보영 등이 나오긴 하지만 재미나 볼거리 위주의 여름 영화는 아니었거든요. 영화 내내 좀 고구마를 먹은 것같은 답답함이 많았습니다. 과연 어떤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요.
영탁은 처음에 예상한 것처럼 대표가 된 후에 변하는 인간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바를 위해 무엇이든 합니다. 개인이 아닌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도 감내해야 한다는 인물입니다. 민성에게 중요한 건 가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희생해도 된다는 주의고요. 명화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이고요. 이런 관점은 평상시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현 상황이죠.
평상시가 아닌 오로지 생존을 위한 시간입니다. 어느 누구도 가장 급한 건 생존입니다. 개인이 다소 희생을 하더라도 다같이 먹고 살 수 있는 생존이 먼저라는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 살짝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가로 치면 독재자가 나와 일사천리로 해도 다소 넘어가야 하는거죠. 공평정대하게 누구에게나 신경써 줄 없는 상황이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건 잘못된 행동인 건 맞습니다. 여기서 명화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진실을 밝히려 합니다.
현 상황에서 그 진실이 밝혀진다고 달라질 건 전 없다고 봤거든요. 각자 생존이 먼저인 상황에서 말이죠. 그나마 영탁은 비밀과 감추려는 것이 있어 그렇지만 아파트를 위한 행동 자체는 순수했습니다. 영화를 놓고 볼 때 평상시라면 이병헌이 빌런이고, 박보영이 영웅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벌어진 상황에서는 제가 볼 때 이병헌이 영웅이고, 박보영이 빌런으로 보였습니다. 영화에서 박보영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단 하나도 인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듯 보이지만요.
영화를 보면서 끝으로 갈수록 어떤 식으로 결말을 풀어갈 지 궁금하더라고요. 이미 대지진이 난 상태라 사람들이 갈 곳은 없습니다. 먹고 살 음식도 인스턴트말고는 딱히 해결 방법이 없어보이고요. 이에 대한 건설적인 방안은 하나도 안 나오더라고요. 마지막에 다소 희망적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좀 터무니없게 느껴졌습니다. 외부인들도 생존을 위해서 각자도생이고 야생일 수밖에 없거든요. 아마도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게 당연하다고 보이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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