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5. 09:00ㆍ영화
한국에서는 실세 사건을 작품으로 만들어도 실제가 아니라는 걸 밝힙니다. 헐리우드에서는 많은 작품을 봐도 그런 경우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사건인지 밝히고요. 심지어 실명까지 전부 공개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해당 작품에 대한 실제 사건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한국에서는 허구 작품인데도 꼭 밝힙니다. 해당 작품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 지명 등과 관련이 없다고요. 혹시나 관련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봐도 너무 확실한데도 왜 그렇게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누군가 가처분을 걸거나 들고 일어나니 문제 될 요소를 사전에 방지하기 때문이겠죠. 왜 그러는지 알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기 아닌가합니다. 더구나 누가 봐도 너무 확실한 인물인데도 가명을 쓰면서 하는 건 맞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행복의 나라>도 실제 사건에 기반합니다. 영화 속 인물 대다수가 실제 인물입니다. 허구로 만든 캐릭터도 있겠지만 대세에 지장은 없습니다.
이제는 당시 인물도 많이 사망하며 1979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역사적 사건이 영상화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관련된 사료 등이 꽤 많아 정확힌 팩트에 기반해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제작진과 감독이 어느 정도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적용할 지라도요. 지금까지 김재규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된 배경이 많이 나왔는데요. 당시 함께 참여했던 박대령에 대한 부분은 이번에 저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될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네요.
여기서 중요한 건 당시 행동의 정당성입니다. 어떤 사건과 행동은 당대에 내린 평가가 후대에 와서 다시 재조명되면서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동안 재판통해 김재규는 사형당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만큼 껄끄럽고 사회적인 주목을 받는 일이라 진짜 진실이 드러나는 걸 싫어한 인물이 있었겠죠. 대통령 암살 당시에 박대령은 현장에서 총소리가 나자 순간적으로 달려가서 김재규 편에 서게 됩니다. 이 부분이 논쟁이 됩니다.
당시 김재규 편에 있던 사람 중 유일하게 군인이었습니다. 삼심이 아닌 군인재판으로 딱 한 번에 결정됩니다. 이와 관련되어 부당하다고 여긴 사람들이 변호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조정석입니다. 박대령 역은 이선균이 했고요. 조정석은 변호사인 태윤기역을 했습니다. 둘 다 실존인물이네요. 원래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 일을 하던 태윤기가 이 사건으로 이름을 알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건을 맡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에는 달라지지만요.
여기서 쟁점은 박대령이 한 행동입니다. 박대령은 강직한 군인입니다. 중요한 건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직속 상관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렸으니 할 수밖에 없다고요. 그렇게 볼 때 뼛속까지 군인이라고 할 수 있죠. 명령이 부당하다는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명령을 받았으니 이유여하를 따지지 않고 행하는 것이 군인인거겠죠. 이런 부분은 군대에서 상명하복이라는 문화입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남자가 군대를 갔다오기에 사회전반적으로 당연시되었던 문화죠.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는 명령이라도 올바르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가 되어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어느 정도는 과거와 달라졌다고 봅니다. 무조건 상사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건 이제 아니라는거죠. 그렇게 박대령이 한 행동에 대해 변호를 하는데 쉽지 않죠. 무엇보다 군인으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지려하죠. 영화는 여기에 전소장이 나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인데요. 유재명이 역할하는데 머리까지 신경썼다고 하네요.
제목이 <행복의 나라>입니다. 솔직히 영화를 볼 때 왜 제목을 행복의 나라로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제곡으로도 행복의 나라가 나오는데요. 마지막에 조정석이 유재명에게 한 말이 핵심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유재명에게 왕이 되고 싶으면 왕이 되라고 합니다. 돈을 많이 갖고 싶으면 많이 가지라고도 합니다. 대신에 사람은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이 대사는 사실 단순히 재판만 놓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까지 생각하며 한 대사가 아닐까하네요.
그러다보니 영화가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흡인력있게 흘러가는데요. 후반에 가서는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영화에서 중요한 걸 명령이라고 봤거든요. 영화에서 주요 인물도 결국에는 군인이고요. 정작 영화 제목과는 다소 매치가 안 되더라고요. 조정석이 이야기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라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겠죠. 저는 그저 그런 거창한 개념보다는 한 개인의 신념과 자신의 직업을 충실히 실천하려는 변호사 이야기같았습니다.
이선균의 진짜 마지막 유작이 되었네요. 이번 영화는 3명이 타이틀 롤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조정석이 주인공입니다. 조정석 관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니까요. 마지막에 조정석이 재판 후 어떻게 살았는지 나왔으면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이미 재판받은 모든 사람의 결과는 알고 있으니까요. 대동령 시해부터 1212사태까지 영화로 거의 모든 게 다 나왔네요. 당시와 관련된 영화가 여러 편 나오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후를 다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건 실명으로 나오면 좋겠네요.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조정석, 이선균, 유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