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8. 09:00ㆍ영화
영화 제목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 말로 하면 전생입니다. 감독은 전생이 아닌 인연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인연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없다고 합니다. 가장 비슷한 영어 단어를 썼을 듯한데요. 역시나 도저히 뉘앙스를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되네요. 인연과 전생은 비슷한 듯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우리는 말하는데요. 전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느낌이 좀 더 강합니다. 한국에서는 짧은 인연과 깊은 인연도 있고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3명이 나옵니다. 해성 역의 유태오와 노라 역의 그레타 리가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요. 그 옆에 아서 역의 존 마가로가 앉아 있습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의문을 갖습니다. 3명이 어떤 관계인지 말이죠. 동양계로 보이는 해성과 노라가 연인 같기도 하고요. 노라가 가운데 앉아 있어 그런지 그 옆의 아서가 연인 같기도 하고요.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새벽 4시라고 하면서요. 백인 남자인 아서는 옆에서 다소 뻘쭘하게 앉아 있거든요.
이렇게 시작한 후에 24년 전으로 갑니다. 노라와 해성이 초등학생 시절입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감독이 뜻하지 않게 유명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전설같은 영화 중 하나인 <넘버3>를 만든 감독이라서요. 딸이라고 하는데 감독 첫 데뷔작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으니까요.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주목받고 있고요. 영화 내용이 어느 정도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생이었던 노라는 아빠가 감독으로 나오고 캐나다로 유학갑니다.
당시에 해성은 노라와 무척 친했고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만 결혼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노라 엄마는 추억을 남겨 주겠다며 둘을 데이트하게 만들었고요. 해성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체 이민 가기 전 날 알게되어 실망하며 노라를 원망하는 듯하죠. 그 후 12년이 지난 후 노라가 해성을 SNS를 통해 찾아 보는데요. 이미 해성이 노라를 찾으려고 SNS에서 여러 게시물을 올린 상태였습니다. 둘은 그렇게 연결이 되었고 영상 통화를 하며 근황을 주고 받으며 반가워하죠.
노라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지만 해성은 그 이후로도 계속 찾았던 듯합니다. 이름을 노라로 했으니 예전 이름으로 찾을 수 없던거죠. 처음에 다소 어색했던 둘이지만 금새 친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릴 때 친구였던 사이는 이상하게 어른이 되어 만나도 금밤 친해지죠. 해성은 한국 서울에 있고 노라는 미국 뉴욕에 있습니다. 서로 시차가 맞지 않죠. 한 명이 낮일 때는 다른 한 명은 밤이니까요. 그럼에도 둘은 매일같이 영상 통화를 하며 더욱 친해지는 사이가 됩니다.
아직 학생인 해성과 달리 노라는 다릅니다. 중간에 굳이 해성이 군대갔던 화면을 넣습니다. 아마도 둘이 나이는 같지만 서로 만났을 때 처지가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었겠죠. 노라와 해성의 입장은 다르다는 점을요. 아직 학생인 해성과 달리 노라는 캐나다에서 뉴욕까지 온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때 이민왔지만 이곳에서 이방인 입장이죠. 농담처럼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영어로 써야 한다고 어릴 때 말했는데요. 노라는 이곳에서 커리어를 열심히 올려야 할 시기입니다.
이럴 때 해성과 만남은 너무 좋지만 노라 삶에 너무 깊숙히 들어왔습니다. 노라가 서울을 가거나 해성이 뉴욕에 와야 할 상황으로 점차적으로 깊어지고 있죠. 노라는 자신이 하려던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해성은 아직 학생이니 깊은 생각은 없고 그저 노라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울 따름인 듯하고요. 노라는 해성에게 여기서 그만 할 것을 말하죠. 정확히는 한동안 연락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 백인 남자와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고요.
또 다시 12년 후에 둘은 서로 만나게 됩니다. 12년 터울로 둘은 만나게 되는데요. 일부러 12년을 한 듯합니다. 동양에서는 띠라는 게 있어 12지간으로 12년마다 해당 띠가 돌아오니까요. 노라는 결혼해서 사랑하는 남편과 있는 상태고요. 해성은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상태고요. 이런 상황에서 만나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단순히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아니죠. 여기서 한국과 서양의 차이기도 합니다. 해성은 현재 여자와 헤어진 상태에서 노라를 만나러 갑니다.
노라는 엄연히 남편이 있는데도 해성을 만납니다. 노라 남편인 아서는 쿨하게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만나서 좋았냐는 이야기도 하고 꽤 깊게 물어보는데 노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거의 솔직하게 말합니다. 심지어 첫 장면이었던 노라를 가운데 두고 해성과 아서가 좌우에 있는데요. 여기서 아서는 미국이지만 이방인이 됩니다. 노라와 해성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서는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노라는 등을 돌려 해성을 바라보며 대화하죠.
둘이 이야기하며 나누는 눈빛은 다른 사람이 착각할만큼 어느 정도 애정이 느껴질 정도죠. 실제로 둘 사이에 스킨십은 없지만 그런 느낌마저도 들고요. 바로 옆에 남편인 아서가 있는데요. 노라가 잠시 없을 때 해성과 아서가 이야기 나눌 때는 서로 의사소통은 안 되지만 적대감은 보이질 않습니다. 둘이 하는 대화 중에는 전생에 대한 말을 하긴 합니다. 둘이 전생에 만났을 듯한데 이번 생에는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이죠. 제가 볼 때 지금 이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연은 또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모르니까요. 둘 다 이제 겨우 30대니 향후 어떤 식이 될 지는 모른다는거죠. 유태오가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는데요. 남편이 있는 상황에서 노라와 이야기할 때 눈빛과 마지막 헤어질 때 말없이 노라를 보는 눈 빛. 제가 볼 때는 그 눈빛때문에 후보가 된 것이 아닐까합니다. 그 눈빛은 해성이 갖고 있는 마음을 나타내거든요. 실제로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 마주보는데요. 아무 말도 없이 둘 다 서로를 바라봅니다.
1분 넘게 바라보는 데 아무런 스킨십도 없지만 성적인 긴장감이 팽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 헤어진 다음에 노라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서에게 다가가 안기면서 펑펑 우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묘한 여운이 있더라고요. 인연은 결코 억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은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죠. 한국에서 인연은 그런 느낌이죠. 최소한 해성이 뉴욕까지 가서 노라를 만난 건 전 잘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해성 입장에서 마음은 편할겁니다.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인연은 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