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7. 09:00ㆍ세계문학전집
<주홍글씨>라는 단어가 너무 강렬해서 잊기가 힘들다. 그건 단순히 주홍글씨라는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느낌보다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원제는 <The Scarlet Letter>다. 주홍 편지라고 할 수 도 있는데 좀 더 정확한 번역은 주홍글자가 맞다고 한다. 번역을 잘못한 대표적인 사례라고도 한다. 주홍글자는 A다. A는 Adultery의 약자로 간통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이 워낙 쎄서 주홍글씨라고 해도 저절로 뭔가 큰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내가 뭔가 착각을 했는지 주홍글씨를 가슴에 인두같은 걸로 새기는 것인지 알았다. 평생 지워지지 않게 새기는 걸로 알았다. 책을 읽어보니 그렇게 했을 때 단기간에 큰 고통을 줄 수 있을지언정 얼마든지 속이고 살아 갈 수 있다.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옷을 입은 후에 A표식을 달아서 확실히 인식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다른 동네에 가서 살아도 될텐데 그런 시도는 왜 안 하는가도 생각했지만 당시 시대 상황을 볼 때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이주하는 건 쉽지 않았을테다.
책이 시작되자마자 곧장 헤스터 프린이 아이를 데리고 사람들에게 공개 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당사자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말한다. 아이를 데리고 있고 따로 남편이 있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그다지 친절하지도 잘 알려주지도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남편이 누군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가 남펴의 아이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남편은 동네에 없는 거 같은데 아이가 나왔고, 이를 추궁하자 헤스터가 침묵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그 부분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끝까지 헤스터는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한 인물이 헤스터에게 다가온다. 재판을 통해 주홍글씨는 계속 달고 일단 불쌍하니 거주하게 한 결과 후였다. 칠링워스라는 의사였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재판하는 날 마침 이곳에 도착했다. 그는 조용히 헤스터에게 밝히지 말라고 하면서 아이 아빠가 누군지 추궁한다. 칠링워스가 바로 헤스터의 진짜 남편이었다. 둘의 관계는 이미 깨진 상태였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저 칠링워스가 나쁜 놈이라는 뉘앙스로 묘사된다. 자신이 어떤 수단을 벌여서라도 꼭 아이 아빠를 찾아 내겠다는 말을 한다. 상식적으로 헤스터가 일체 함구하는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있다. 사실 소설 초반에 헤스터를 교수대에 놓고 참수하려 했다. 끝까지 침묵한 헤스터를 용서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도 있으니 살게 했을 뿐이다. 그 재판에서는 소설에 나오는 모든 주요 인물이 전부 출연한다. 책을 읽은 후 그 재판에서 이미 모든 게 드러났다는 사실을 알아 챌 뿐이다.
그 후 몇 년이 흐른 후 헤스터는 여전히 해당 마을에 거주한다. 여전히 그는 어디서나 옷에 A표식을 달고 다닌다. 누구나 보자마자 알 수 있게 표식은 두드러진다. 딸인 펄은 아주 잘 자랐다.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펄은 아이답기도 하지만 일부로 묘사와 설명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좀 되바라지거나 잔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이답게 호기심이 강하고 궁금한 건 참을지 모른다. 엄마가 하는 A표식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하고 헤스터가 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 한다.
남들에게는 안 좋은 표식인 A가 펄에게는 오히려 가장 친근한 엄마의 표식이 되어버렸다. 아서 딤스데일은 교회 목사다. 상당히 설교를 잘해서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 대신에 건강이 좋지 못해 그를 의사가 돌보고 있다. 그 의시가 바로 헤스터의 남편인 칠링워스다. 칠링워스는 지극정성으로 아서를 돌보고 있다. 진실은 나중에 밝혀진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칠링워스가 아서 바로 옆에 늘 가까이 있는지. 그 어떤 징조나 느낌도 소설 중반까지 나오지 않는다.
헤스터는 A라는 표식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걸 제외하면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착실하고 착하게 살고 있다. 어떤 욕심도 내지 않고 담백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을 돕고 산다. 자연스럽게 평판은 올라갔다. 여전히 헤스터 주변에 함부로 가가가지는 못하지만 심적으로 다들 헤스터를 이웃으로 반기고 있다. 가까이 가는 게 남들의 눈치가 보여 다가서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은 뒤로 가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소설이 나왔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나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 너무 미묘하게 함부로 이야기하 힘든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시대와 사회와 문화와 국가와 부족 등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인 도덕인지 여부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달라지기도 한다. 과거에 했던 어떤 부분은 지금에 와서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한다. 당시 시대에는 당연했던 것이 달라지는 것이 많다. 헤스터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사랑을 지킨 것인지, 아이를 지킨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끝까지 자신이 감수하고 발설하지 않을 걸 마음에 담고 간다. 소설에서 심리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부분만 거의 대부분 나온다. 헤스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감정이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을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묵묵히 펄을 데리고 살면서 감담하고 생활을 한다. 이야기를 할 사람도 펄 이외는 없으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인 헤스터에게는 그 자체로 엄청난 형벌이었으리라 본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 갈 것으로 책에서는 묘사한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가에 대해서 놀랍다면 놀랍다. 더구나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낙인이 찍힌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왜 스스로 그 굴레를 벗지 않고 기꺼이 안고 살아가기로 했는지 나로써는 솔직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해피엔딩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뭐래도 헤스터는 주최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산다. 그렇게 볼 때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승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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