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5. 14:06ㆍ드라마

JTBC에서 새롭게 시작한 토일 드라마 <백번의 추억>은 제목에서부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흔히 사랑의 횟수를 연상시키는 '백번'이라는 단어는 사실 주인공들이 일하는 100번 버스를 의미합니다. 사랑을 백 번 한다는 낭만적인 상상 대신, 198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100번 버스 안내양들의 삶과 우정, 그리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며 우리를 아련한 추억 여행으로 안내합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지금은 사라진 직업인 '버스 안내양'의 시선을 통해 그 시절의 사회상과 청춘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그려낼 것을 예고하며 첫 회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은 1982년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최근 유행하는 1990년대 레트로 감성을 넘어, 한 세대 더 거슬러 올라간 본격적인 복고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상징적인 존재 중 하나는 바로 여성 버스 안내양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카드를 찍거나 현금을 내는 방식이 아닌, 승객들로부터 토큰이나 회수권을 받으며 "오라이!"를 외치던 그들의 모습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풍경입니다. 드라마는 버스의 앞문이 아닌 중간문으로 승객을 태우고 내리게 하며 요금을 받던 안내양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복원하여, 그 시대를 겪었던 이들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한 흥미를 선사하며 시대적 배경에 대한 깊은 몰입감을 자아냅니다.

<백번의 추억>은 1980년대의 공기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 놓기 위해 시각적인 디테일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만원 버스의 풍경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승객들을 콩나물시루처럼 버스 안으로 밀어 넣는 장면은 당시의 고단한 출퇴근길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버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지하철에서도 승객들을 열차 안으로 밀어 넣는 '푸시맨'이라는 아르바이트가 존재했을 정도로, '만원'은 그 시대의 일상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이러한 시대의 단면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단순한 배경 설정을 넘어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의 질감과 분위기를 시청자들이 직접 체감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 아련한 추억 여행의 중심에는 개성 넘치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배우 김다미가 연기하는 고영례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꿋꿋하게 일하는 선배 안내양입니다. 순수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인물로,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배우 신예은은 당돌하고 거침없는 신입 안내양 서종희 역을 맡았습니다. 기존의 위계질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캐릭터입니다. 마지막으로 배우 허남준이 연기하는 한재필은 1년 휴학 후 복학한 고3 학생으로, 백화점 사장 아들이라는 배경과 복싱 선수라는 의외의 면모를 지닌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이 세 사람의 만남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기대가 모아집니다.

드라마의 이야기는 서종희가 100번 버스의 신입 안내양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녀가 처음 마주한 버스 안 세상은 고참들의 텃세와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종희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당한 대우에 당당히 맞서고, 비효율적인 관행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선배 고영례의 눈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을 너무 많이 태우려다 정작 본인은 버스에 오르지 못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 어수룩한 면도 있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고영례는 서종희의 당찬 매력에 점차 이끌리게 되며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감의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동료를 넘어 둘도 없는 친구, 즉 '죽마고우'로 발전하는 계기는 서종희가 억울한 누명에 휘말리는 사건을 통해 마련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억울함을 감수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청했을 상황에서, 서종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결백을 증명해냅니다. 이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고영례는 그녀의 강인함과 정의로움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서로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확인한 두 사람은 서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80년대라는 낯선 시대를 함께 헤쳐나갈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들의 워맨스는 극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감정선이 될 것입니다.

고영례와 서종희의 끈끈한 우정 사이로 한재필이라는 존재가 끼어들면서 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재필은 우연히 버스에서 마주친 두 사람과 얽히게 되면서, 단순한 고등학생을 넘어 그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부상할 전망입니다. 백화점 사장 아들이라는 부유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싱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다 우연히 출전한 대회에서 TV에까지 등장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입니다. 그의 등장은 두 친구의 우정에 풋풋한 설렘과 미묘한 긴장감을 동시에 불어넣으며, 80년대 청춘들의 성장통을 담아낼 삼각관계의 서막을 열 것으로 예상됩니다.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 버스 안내양들의 생활상 또한 흥미롭게 조명합니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었던 그들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동고동락했습니다. 방마다 '방장'을 두는 등 그들만의 공동체 문화와 규칙이 존재했으며, 이는 당시 얼마나 많은 인력이 버스 안내양으로 투입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또한, 극 중 고영례와 서종희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에서는 당대의 히트작인 '애마부인'이 등장하여 시대적 분위기를 더합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넷플릭스에서 '애마부인'을 모티브로 한 시리즈가 제작된 바 있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러한 문화적 코드는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연결고리를 선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의 배경과 실제 역사, 그리고 촬영지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극 중에서 100번 버스는 인천을 오가는 노선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역사 속 100번 버스는 서울 영등포 일대를 운행했던 노선입니다. 여기에 더해, 드라마의 주된 촬영지는 서울이나 인천이 아닌 전주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80년대의 옛 감성과 풍경이 잘 보존된 전주의 분위기가 드라마의 레트로 콘셉트를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주 한옥마을이 연상시키는 고즈넉하고 정겨운 분위기는 드라마의 서정적인 톤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시청자들을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이끕니다.

<백번의 추억>은 주연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또한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김다미는 특유의 순수하면서도 살짝 백치미가 느껴지는 매력을 고영례 캐릭터에 녹여내며 시청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신예은은 최근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똑 부러지고 당찬 이미지를 서종희 역을 통해 다시 한번 각인시키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다만 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고등학생을 포함한 일부 등장인물들의 비주얼이 다소 나이 들어 보인다는 소소한 아쉬움도 존재합니다. 총 12부작으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폭발적인 사건 전개보다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기억될 따뜻한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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