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4. 09:00ㆍ영화
아주 오래도록 수많은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 중 하나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거의 대부분 일방적인 사랑인 경우가 많죠.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해야겠죠.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자녀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죠. 그때부터 이미 부모님의 사랑은 시작됩니다. 이건 특별한 일이 없다면 본능이겠죠.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요. 이기적인 동물이라 할 수 있는 인간에게 거의 유일한 순간이죠.
우리가 세상에 나온 이상 무조건 누군가의 자녀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점차적으로 깨닫지 못하던 부모님의 사랑을 알게 되죠. 세상 어느 곳에서나 보편타당하게 부모와 자녀 사랑은 만국공통어고요. 아마도 그런 이유로 자주 작품에 등장하는 게 아닐까합니다. <3일의 휴가>도 그런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예고편을 보거나 포스터를 볼 때 준비를 하게 됩니다. 분명히 이 영화를 보면 슬플거다. 울면서 볼 수 있는 영화말이죠. 저도 그런 마음을 먹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김해숙은 천국에서 휴가를 받았습니다. 휴가란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가서 3일 동안 함께 하는 겁니다. 상대방은 내가 왔는지 전혀 모르죠. 3일 동안 내가 보고싶었던 사람이 생활하는 걸 보면서 추억을 쌓는거죠. 사람은 추억이 많을수록 행복하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하네요. 특히나 김해숙은 자녀가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딸을 보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천사인 강기영이 가이드로 도착한 곳은 미국이 아닌 한국 김천이었습니다.
김천에서도 사람도 거의 없는 장소였고요. 알고보니 그곳은 김해숙이 생의 마지막에 숙식하며 장사도 했던 자기 집이었습니다. 완전히 잘못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도착하고보니 딸인 신민아가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백반 장사를 하고 있어요. 완전히 한적한 곳이라 오는 손님도 없는 곳인데 말이죠. 그곳에서 혼자 장사를 하고 있어요. 분명히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아주 자랑스러운 딸인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죠. 아무리 봐도 김해숙 딸인 신민아가 맞고요.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죠. 혼란스러운 김해숙은 신만아를 볼 수 있을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신민아는 드물지만 온 손님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받는 돈도 무료나 마찬가지죠. 얼핏 전화통화하는 걸 들어보니 대학도 때려치고 온 듯한 느낌이고요. 엄마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죠. 신민아가 공부만 하라고 온갖 고생을 다했거든요. 김해숙 인생은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신민아가 자기같은 인생을 살지 않고 멋지게 살기를 바라는거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요.
홀로 신민아를 보살피기 위해 파출부 일도 했습니다. 혼자서 키우는 게 어려워지자 일부러 어린 딸을 맡겨야 했습니다. 집에서도 자신이 번 돈으로 동생이 대학까지 다녔고요. 어떤 집에서 식모인지 아내인지 모를 제안을 합니다. 대신에 딸은 책임지고 대학교는 물론이고 유학도 원하면 보내준다고 말이죠. 김해숙은 결심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딸이 공부해서 자라길 바랍니다. 이걸 알게 된 딸도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요.
그 과정에서 서로 오해도 합니다. 딸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 엄마. 어린 마음에 그런 사정보다는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자란 딸.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표현도 서투르죠. 특히나 한참 예민할 사춘기에 딸은 엄마에 대한 원망을 갖게 되고요. 영화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추억입니다. 우리는 모두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은 더욱 많아지며 흐믓할 때가 있습니다.
고생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추억이 없다는 건 어쩌면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형벌일 수 있습니다. 지금 벌어진 일만 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현재 눈 앞에 본 사람만 아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과 함께 했던 걸 공유하는거죠. 그런 친밀감이 서로 더욱 친해지게 만들죠. 시간이 갈수록 함께 했던 경험이 추억이 되어 평생 간직하게 됩니다. 상대방을 만나지 않아도 그런 추억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요.
김해숙은 그런 추억이 신민아와 거의 없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둘이 함께 살 때는 있었지만요. 서로 따로 살게 된 후로는 거의 없습니다. 김해숙이 신민아를 찾아가도 데면데면 했고요. 나중에는 오라고 해도 바쁘다며 오질 않았죠. 신민아는 갑자기 엄마가 죽은 후 죄책감에 빠집니다. 왜 그렇게 엄마에게 행동했는지 후회하고요. 신민아는 현재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김해숙은 더욱 신민아를 직접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건 불가능하니 천사가 안 된다고 하고요.
이렇게 자신이 떠나면 신민아가 자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가능하더라도 김해숙이 신민아와 갖고 있는 모든 추억은 삭제 된다고 하죠.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저라면 추억 삭제를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추억은 소중하지만 삭제했다면 의미없는 게 되잖아요. 오히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걸 선택할 듯합니다. 더구나 난 이제 상대방을 만나지 못할테니까요. 상대방 기억에는 내가 추억으로 남을테고요. <3일의 휴가>는 바로 그런 걸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결국에 울면서 보진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