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2023. 9. 25. 11:01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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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어떤 사람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헤어진다. 실제로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하다. 오랫만에 만나면 어떻게 살았는지 듣는다. 대체적으로 함께 이야기하면 좋은 정도다. 너무 흥미롭거나 빠져들 정도는 아니다. 무난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쩌다 만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거나 생활 속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소설 <면도날>은 그런 면에서 작가가 단순히 관찰자 입장에서 머물지 않고 중요할 때마다 만나고 조언도 한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엘리엇이 주인공으로 알았다.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다. 철저하게 작가인 내가 만나고 보고 들은 이야기를 서술한 소설이다. 심지어 자신이 특정 내용은 어느 정도 각색을 했거나 윤색했다는 뉘앙스가 있지만 고백한다. 들은 이야기라 불안정하다고. 엘리엇은 상당한 부자다. 기본적으로 거의 매일 파티를 즐긴다. 자신이 직접 개최하기도 하고 초청받아 참여하기도 한다. 부동산을 구입하고 투자로 수익을 내며 미국과 유럽에 여러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엘리엇은 작가를 만났지만 그다지 유명하지 않기에 처음에는 다소 탐탐치 않았다. 여러 번 만나면서 점차적으로 친하게 지낸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갖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한다. 소설을 쓰는 작가는 예술적 심미안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문화와 에술에 대한 조언이 깊은 경우가 많다. 이건 돈이 있다고 가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단순히 부자는 천박하다. 돈만 있는 부자는 귀족에 끼지 못한다. 예술적인 소양을 갖춰야 귀족이 아니라도 대접을 받는다.

엘리엇은 그렇게 작가와 친해진다. 엘리엣에게는 조카인 이사벨을 만난다. 더없이 발랄하고 얼핏 천진난만하지만 가난을 모르고 살았다. 부자까지는 아니지만 엘리엇을 통해 여러 도움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다. 그는 결혼을 약속한 래리가 있다. 래리는 전쟁에 참여해서 전우가 죽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이사벨 마음과 달리 어딘지 결혼에 대해 미적거린다. 무엇보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한량처럼 살려고 한다.

가능했던 이유는 어느 정도 유산을 받아 어렵지 않게 살고 있다. 풍족하지 않지만 아끼며 살면 살아갈 수 있다. 래리는 직장을 얻기보단 자신에 대한 탐구를 원한다. 이사벨이 간청을 하지만 유럽에서 1년 정도 생각도 하며 시간을 보낸 후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그 후에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직장도 잡고 결혼도 하자며 이사벨은 말한다. 래리는 영혼이 자유로운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건 구원도 아니다. 알 수 없는, 잡히지 않는 뭔가를 찾고 싶은 순수한 욕망인지도 모른다.

래리가 한 행동을 엘리엇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사벨이 래리와 헤어지길 바란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불편한 심기는 내비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사벨이나 작가에게만 말할 뿐이다. 래리는 유럽에 거주하면서 연락도 하지 않는다. 래리가 이사벨을 사랑하는건 맞다. 래리에게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라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래리에겐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욕망을 억누르는 절제가 있다. 책을 읽어볼 때 래리가 성욕이 있는지 여부는 확실히 모르겠다.

이사벨이 자신에게 향한 마음을 알지만 외면하는건 아니다. 그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할 뭔가를 찾지 못하는데 다른 건 크게 의미가 없다. 육체적 어려움이나 막노동도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육체노동을 통해 힘든건 자신이 찾는 구도를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먹고 살아야 하니 일을 한다. 그런 면에서 경제에 대해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작가가 말한다. 당신에게 금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후회할 것이라고 작가 자신이 그걸 너무 잘 안다고.

래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을 다 버리고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췄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속물이라 너무 찬성한다. 굳이 고난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각자 추구하는 삶의 의미가 다르니 이건 가치 영역일 수 있다. 정답은 없다. 결국에 이사벨과 래리는 헤어진다. 정확히는 이사벨이 포기한다. 제대로 된 일을 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하길 원한다. 그건 이사벨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래리가 나쁜 것도 아니다. 각자 선택한 길이 다를 뿐이다.

래리와 작가, 작가와 이사벨, 엘리엇과 작가는 그런 식으로 몇 년에 걸쳐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엘리엇은 이제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기꺼이 자신의 속마음도 말한다. 이사벨은 작가와 더할 나위 없는 친구가 된다. 작가도 이사벨이 좋다.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말이 통한다. 작가는 그렇게 셋이랑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에게 가교역할도 한다. 이사벨은 래리를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이 먹을 걸 주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래리가 살아온 인생을 전부 내가 소개하긴 너무 방대하다. 그는 유럽에서 탄광에서도 일한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가 찾고 싶은 건 없었다. 다소 신비주의에 가까운 영을 추구했다. 누군가 알려준 인도로 간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직접적인 정답을 준 구도자를 만난건 아니다. 구도자는 선문답처럼 대화를 하지만 래리에게 영적인 충만함과 스스로 찾아 갈 길을 제시한다. 정확히 제시했다고 보다는 래리 스스로 찾았지만 덕분에 찾았다고 느꼈다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작가답게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분량으로 쏟아낸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것인지, 창작한 허구 인물인지는 모른다. 래리는 결혼할 뻔도 하지만 그건 사랑보다는 측은지심에 좀 더 가까웠다. 이사벨은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만 자신이 사랑한 래리를 쉽게 놔주지도 않는다. 래리가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래리는 영적으로 충만한지 몰라도 세상 이치는 오히려 몰랐던 것이 아닐까. 저 높은 곳을 보면 낮은 땅에서 벌어지는 일은 소홀하게 된다.

여기까지 말하면 래리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 살아 갔을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아니다. 래리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아니다. 모르겠다. 작가는 래리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다. 래리가 청년으로 살아간 삶은 안다. 래리가 좀 더 나이를 먹어 중년이 되었을 때까지는 모른다. 래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일반인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영적 전도를 했을까. 소설에서는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청년으로 살며 경험한 인생을 통해 나이들어 보여지는 삶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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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진정한 인생과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사는게 의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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