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에서 아쉬움을 달래다

2023. 6. 12. 09:00국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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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헤어지는 건 대체로 힘든 일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면 더욱 그렇다. 어느 정도 준비된 헤어짐은 그나마 괜찮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헤어진다면 어떨까. 사고가 생겨 사랑하는 사람을 어느날 갑자기 만나지 못하게 된다. 엄청난 후회와 아쉬움과 전하지 못할 말들이 가슴에 쌓여 응어리가 되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전달할 대상자가 없다. 어떤 말을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자기 고백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되어 버린다.


다시 기회를 준다면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간절하게 바라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 못한 말은 평생 응어리 진채로 가슴에 남아 맴돌게 된다. 그나마 이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 글로 쓰는 것도 있다. 비록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겠지만 나라도 뱉어내면서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한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라고 본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잘 벌어지지는 않는다. 보통 만나 이야기하고 서로가 헤어질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결정한다. 질병에 걸려도 어느 정도는 서로가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헤어진다. 거의 유일하게 사고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지게 된다. 그런 상황이 오면 어느 누구도 평정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 사고를 알게 되는 즉시 할 말을 잃고 앞이 깜깜해진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사고가 나도 그럴진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어쩌면 평생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슴 한 가운데 또아리를 틀고 나를 안 놔줄지도 모른다. 나를 안 놔주는 건 바로 나라고 해야겠지만. 바로 그렇게 가슴에 누군가를 묻고 살아가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이다. 어떤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단순히 뉴스로 보지만 각자 삶이 분명히 있다. 당사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사연이 있다. 사소한 것은 절대로 없다. 전부 엄청난 사연과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그곳에는 있다.


기차가 탈선을 하면서 타고 있던 사람도 함께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단순히 사고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아있는 사람과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끈은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심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까. 어느 정도 기억이 희미해질 수는 있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감정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해당 장소나 해당 날짜가 된다면 기억은 되살아나고 감정은 부풀어올라 나를 지배한다.


책에는 총 4명의 사연이 나온다. 뭐랄까. 일본 특유의 내향적인 면이라고할까. 책에 나온 주인공은 전부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다. 조용히 자기 감정을 숨기거나 드러내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차마 상대방에게 내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는 그에게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상대방을 오해하거나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다.


우리는 누구나 무한하지 않고 유한한 인생을 산다. 그걸 알고 있어도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온다고 달라질 것은 그다지 없다. 내가 마음을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도움되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이야기를 한다는 걸 꺼려하고 익숙해지면서 그런 관계가 자연스럽다. 그렇게 살다 상대방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를 얻게 되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고가 난 기차를 다시 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대신에 조건이 있다. 기차에 탈 수 있는데 절대로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억지로 사고났던 사람과 함께 내려도 안 된다. 사고가 났던 장소 전 역에서 내리지 않으면 나도 죽는다. 이런 조건을 알고 기차를 탄다. 기차를 탄 사람은 사랑했던 사람이다. 연인, 부모, 짝사랑, 배우자. 이들에게 미처 내 진심을 전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헤어졌다. 이대로 살아간다는 건 내 삶도 제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내 마음만이라도 전달하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기차를 탄다.


네 가지 사연 중 세 번째 사연이 있다. 평생을 짝사랑하던 누나가 있었다. 반에서 왕따였고 집에서도 엄마가 나가서 새롭게 결혼하고 아빠는 바빠서 늘 늦게 온다. 아주 우연히 한 누나를 알게 된다. 비가 오는 날 자신을 봐주던 누나.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봐주던 누나. 늘 주변을 맴돌았지만 고백할 수 없었다. 타이밍도 놓쳤고, 고백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포기했는데 몇 년 후에 다시 학교를 가던 기차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래도록 또다시 지켜보면서 고백하려 했다.


결국에는 고백도 하지 못했는데 기차사고가 났다. 사실 해당 기차에는 둘 다 타고 있었지만 운 좋게 나는 다른 차량에 있어 살아남았다. 고백을 하려던 바로 그 날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렇게 유령 열차에 타 누나에게 드디어 고백하려고 하던 그 순간에 진실을 알게 된다. 이런 내용이 책에는 나와서 감수성이 아주 풍부한 사람은 계속 울면서 읽을수도 있을 듯하다. 정말로 해야 할 말이 있다면 더이상 늦지 않고 고백하는 게 좋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닐 듯하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다들 왜 그리 말을 못해.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기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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