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카피캣 킬러 대만드라마

천천히꾸준히 2026. 2. 27. 13:01
반응형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모방범』은 한국의 추리 소설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른바 '필독서'로 꼽히는 명작입니다. 방대한 스케일과 치밀한 심리 묘사로 찬사를 받는 작품이지만, 막상 읽으려고 책을 집어 들면 무려 3권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와 방대한 분량에 압도되어 선뜻 시작하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시간을 온전히 투입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매번 도전을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묵혀두고 완전히 잊고 지내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대만에서 제작된 드라마를 통해 이 거대한 서사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넷플릭스에서 이 드라마를 접했을 때는, 이 작품이 그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원작으로 한 대만 드라마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대만 특유의 습하고 묵직한 스릴러 분위기에 이끌려 시청을 시작했는데, 극이 전개될수록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소름 돋는 범죄의 패턴들이 등장하며 원작의 뼈대를 떠올리게 만들더군요. 원작의 무대인 일본 도쿄를 1990년대 대만 타이베이로 옮겨오면서, 대만 사회의 시대적 배경과 절묘하게 녹아든 각색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두꺼운 책장을 넘기는 대신 화면을 통해 이 엄청난 서사를 시각적으로 쫓아갈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드라마의 정확한 영문 및 한국 넷플릭스 공식 제목은 『카피캣 킬러(Copycat Killer)』입니다. 대만 현지 원제는 한자어 그대로 『모방범(模仿犯)』을 사용하고 있죠.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카피캣 킬러'라는 영문 제목이 연쇄 살인마의 모방 범죄를 다루는 스릴러 장르의 특성을 좀 더 직관적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은 드라마 전반에 깔린 어두운 분위기를 잘 대변해 줍니다.

대만 드라마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친숙하게 느낄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도 이 작품의 묘미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궈샤오치' 검사 역을 맡은 오강인(우캉런) 배우의 연기 변신이 눈에 띕니다. 그동안 다양한 로맨스나 현대극에서 부드럽거나 개성 넘치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던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웃음기를 싹 거둔 가장 진지하고 무표정한 배역을 맡아 극의 묵직한 중심을 잡아줍니다. 오강인 배우 특유의 깊은 눈빛과 무미건조한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표정 연기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강직한 검사 캐릭터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궈샤오치 검사의 업무 스타일이 우리가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검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만 뒤적이는 권위적인 검사가 아니라, 직접 두 발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형사들과 동고동락하는 이른바 '행동파'입니다. 1회에서 소년 범죄 사건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소년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범행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그는 소년이 즐겨 하던 롤플레잉 게임(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파이널 판타지 류의 고전 게임)을 사무실에서 직접 밤을 새워가며 끝까지 클리어합니다. 자신은 일주일이나 걸렸는데 너는 하루 만에 깼다며 소년을 칭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사건의 본질과 인간의 심리에 깊이 다가가려 노력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궈샤오치 검사는 약간의 '똘끼'와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직진형 스타일을 지닌 인물입니다. 오로지 진실과 정의만을 좇기 때문에, 부패한 조직 내의 질서나 상하 관계는 그에게 안중에도 없습니다. 심지어 비리를 저지른 같은 부서의 직속 선배 검사마저도 현장에서 가차 없이 체포해버리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렇게 타협을 모르는 그 앞에, 과거의 미제 범죄를 교묘하게 모방하고 조롱하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법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검사와, 세상을 자신의 무대로 삼으려는 사이코패스 범인 간의 숨 막히는 두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를 선택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국에서도 <상견니>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가가연(커자옌) 배우의 출연일 것입니다. 초반 4회 정도까지는 그녀가 맡은 후윈후이(범죄 심리학자)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다소 아쉽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극이 중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연쇄 살인마의 심리를 분석하고 프로파일링하는 그녀의 전문적인 역할이 사건 해결의 핵심적인 열쇠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가가연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매력은 극의 긴장감을 조율하는 데 큰 기여를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연쇄 살인 사건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뤄지는 또 다른 폭력의 주체는 바로 '언론'입니다. 대만은 한국보다 인구 규모는 작지만, 과거부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 상당히 극심했던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인은 이러한 언론의 생리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용합니다. 시청률과 특종에 눈이 먼 방송국들은 진실 규명보다는 대중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데 혈안이 되어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 부풀리고, 결국 언론은 범인이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이자 또 다른 공범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범인이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어떻게 교묘하게 조종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가슴 아픈 에피소드는 납치된 손녀를 둔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범인은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번화가 한복판에서 개처럼 네 발로 기며 짖으라는 참담한 요구를 합니다. 손녀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인간의 존엄을 버린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출동한 경찰에게 제발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절규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끔찍한 슬픔을 자아내죠. 범인이 굳이 이런 의미 없는 가학 행위를 시킨 이유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과 경찰의 인력이 할아버지에게 쏠린 그 틈을 타, 집 앞에 보란 듯이 손녀의 비디오테이프와 속옷을 놓아두는 치밀한 심리전을 펼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드라마와 소설은 전반적인 뼈대는 같지만, 주인공의 시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원작 소설의 주요 화자이자 주인공이 사건의 목격자인 평범한 남고생(신이치)이라면, 대만 드라마는 원작의 여러 인물을 융합하여 '궈샤오치'라는 오리지널 검사 캐릭터를 창조해 극의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일본에서도 이전에 영화판은 혹평을 받았고, 드라마 스페셜이 좋은 평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 대만판 <카피캣 킬러>는 주로 로맨스물에 강세를 보이던 대만 드라마의 훌륭한 장르물적 진화를 보여준 사례로 남았습니다. 넷플릭스 공개 직후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상위권 순위에 오르며 웰메이드 추리 스릴러로서의 가치를 입증한 이 작품, 끝까지 시청하시며 치밀한 심리전의 묘미를 온전히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